함덕 할망
함씨 할머니의 ‘함다리’
함덕마을은 매립된 함덕민속5일시장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어 자연적으로 바다호수가 형성돼 주민들에게 적잖은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한 일들도 초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이웃, 특히 뒷개(水村)쪽에 볼일을 보러 가려면 이 바다호수를 피해 멀리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당시 큰 덕을 지녔던 함씨 할머니는 주민들이 불편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한 나머지 마을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돌덩이를 이용하여 다리를 만들 것을 결심하여, ‘오멍 한 덩어리, 가멍 한 덩어리’돌들을 날라 돌다리를 주민들과 합심해 만드는데 돌 한 덩이라도 갖다 놓게 하고 그 대가로 죽을 나눠주니 다리가 완성되었습니다.
1530년경 동국여지승람 기록에 의하면 다리의 길이가 110보에 달한다 했으니 당시로서는 거대 역사였고, 미루어 구휼 된 지역민의 수가 얼마며 편리가 또한 얼마였을까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단순한 구휼이 아닌 생계지원사업을 유도하여 배고픈 이웃에게는 자존감과 자립정신을 심어주고, 지역민에게는 숙원사항인 통행로를 만드는 대역사를 이룬 지혜는 함씨 할망의 지극한 애민의식이며 그 결과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에, 함덕리에서는 1914년경 근대화 바람에 다리는 없어졌지만 칭송이 자자한 선조의 얼을 기리고 본받으며 함덕리의 정신문화 유산으로 면면히 이어가고자, 1985년 함덕리사무소 앞에 함여사 공덕 기념비를 세웠고, 함덕지역민과 관광객들이 왕래가 잦은 해변에 조형물을 놓기에 이르렀습니다.
일설에는 이 할머니가 설촌했기 때문에 함덕리(咸德里)라고 마을 이름이 붙었다고 하나 기록을 더듬어 강릉함씨 함유천(咸裕千)이 유배온 것은 1576년(선조 9년)이며, 함덕현의 역사상 기록은 717년 전인 1300년으로 거슬러 오르므로 이 같은 내용은 중간에 바뀌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발췌 (함덕향토지/2017), (함씨할망 비석문/ 2021)
사진 설명 : 1914년 근대화 바람으로 다리는 소실되었으나, 1985년 함덕리사무소 앞에 함씨 할망의 공덕 기념비와 해수욕장 중앙 광장에 조형물을 전시하였습니다.
팔선진
큰, 짝선진, 사선진, 뒷개, 새선진, 쌈판, 마늘여, 새뱃그물
우리고장 함덕리는 농·어촌이라 1902년경 청년선각자 남강 한석봉 선생이 멜그물(지인망)의 조망법과 조업법을 가르쳐서 멜(멸치)잡이를 시작하게 된것이 시초가 되어 멜그물 8선진(큰, 짝선진, 사선진, 뒷개, 새선진, 쌈판, 마늘여, 새뱃그물)을 구성하여 큰 어장으로써 마을주민 모두가 소득원이 되는 멜잡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팔선진 멜그물 작업은 협동심을 바탕으로 일을 능률적으로 하기 위함이었고, 서우제소리는 농·어촌동요로 멜작업 할 때 부르게 된 것입니다. 함덕해수욕장 모래밭은 은빛어장 멜잡이 선소리로 인해 함덕리에 크나큰 의식구조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습니다.
함덕8선진명의의 그물 작업부지인 넓은 모래사장은 훗날 함덕리로 기부되어 오늘날 국민 관광단지인 함덕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었다. 이로 인해 함덕리민들의 삶에 훌륭한 협동정신과 개척정신이라는 큰 역량을 주었음으로 우리 함덕리민 일동은 8선진 여러분들의 고마운 뜻과 얼을 기리며 영구히 이 비를 세웁니다.
(팔선진 비석문/ 2021년)